비를 쫄딱 맞았다.
하루 종일 잔뜩 흐린 하늘만 보여주더니, 급기야 저녁이 되어서 비가 내렸다. 내리는 듯 마는 듯, 찔끔찔끔 오던 비라서 우습게 봤는데, 나가고 보니 미친듯이 쏟아지더라. 게다가 날은 어찌나 쌀쌀해 지던지, 분명히 명목상 ‘봄’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입에선 입김이 펄펄 나왔다. 그런 빗속을 꽤나 오래 뛰었으니 어쩌면 그래서 입김이 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춥거나 젖은 것 보다도 마음이 더 아프다. 마음속에 생각하던, 정말로 거짓이 하나도 가미되지 않은 말을 내 딴에는 진실 이랍시고 쏟아 놨는데, 역시나… 대부분의 진실은 비수보다 날카롭더라는 얘기가 바로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내가 말로 상대방을 찌를 줄이야. 이럴줄은 몰랐다. 쥐구멍이 아니라, 두어 발짝만 나가면 바로 내다보이는 이 10층의 베란다에서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나 대체 왜 이런거니. 세상의 여러 현상 중에는 언어로 규명됨과 동시에 그 형체를 가지는 것도 있지만, 언어로 정의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도 있다. 그게 꼭 말로 해야만 하는게 아닌데… 행동과 언어 속에 숨겨진 그 의미를 계속 보고 있었음에도 왜 ‘그게 아니잖아?’ 라고 말해 버렸는지. 뻔히 그런거 아닌걸 알면서 왜 그렇게 얘길 한걸까. 무슨 동정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일까? 평소에는 동정에 그렇게 방방 뛰면서?
지금은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의 소리가 푸르스름한 새벽의 천둥소리 보다 더 크게 들린다. 아무도 없는 이 적막한 방을 키보드 소리와 함께 채우고 있는 유일한 소리. 계속 듣고 있으니 미쳐버릴 것 같아 견딜수가 없다. 아무래도 음악이라도 틀던지, 보지않는 TV라도 켜놔야 할 것 같다.
비가 싫다. 미치도록 증오한다 이 비를.
맘이 안 좋아서 한 전화를 못 받다니 면목이 없구나
집에 오면서 음성듣고 오자마자 컴퓨터키고 바로 니 블로그 들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니 글을 보니 맘이 아프구나
가까이 있다면 등이라도 두들겨주며 힘내라고 말해줄수 있을텐데…
부디 힘내라…
서울에도 오늘 비가 엄청 많이 왔단다.
우리 연구소는 어제부터 낼까지 운현궁에서 행사를 하느라
오늘은 하루종일 우비쓰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행사진행하느라 무척 바빴단다.
그래도 힘들었던 니 전화 못 받은 거 너무 미안해.
우리 정말 만나서 이야기하면 좋을텐데..보고 싶구나
구구// 아니, 뭐 괜찮아. 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걸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도 누군가 답을 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거든. 내가 고민하고 이리저리 깨져서 얻어내는 수 밖에. 그나저나, 거기도 비왔구나. 거 무슨 행사가 그렇게 많다냐 느네 연구소는.
분명히 명목상 ‘봄’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라는 부분에서 아! 지금 한국이 아니시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어요. 지금 날씨는 어떤가요?
reese// 지금 날씨는… 이미 찾아와야 할 봄이 아직도 오지 않고 있어요. 쌀쌀하고 비오고 바람불고… 영 안좋아요.